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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희망곶 그리고 와인

 남아프리카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희망봉(Cape of Good Hope)? 인종차별? 넬슨 만델라? 수 년 전의 남아공 월드컵이 떠오르실까요? 이 곳에도 아름다운 와인이 또한 있습니다.

  이 곳에 1652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인도네시아 무역을 위한 보급기지를 두기 위해서 케이프타운으로 온 이후에 유럽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사람들의 이주가 많았겠죠. 네덜란드 사람들이 당시 신교도들로 종교적 자유를 찾아 왔듯이 프랑스, 독일 등의 신교도들도 망명해와서 주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와인관련해서는 괴혈병에 걸린 선원들을 위해 사이먼 반달 스텔총독이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든 것이 남아공 와인의 스타트 시점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 이주민들은 '보어'라고 불렀습니다. 후에 많은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때의 이민족들과 원주민들 (보어인 몇 명이 죽고 몇 만명의 원주민들이 죽었던 전쟁도 있었다고 합니다.거의 학살 수준이었겠습니다. 많이 안타깝네요.) 혹은 영국과의 다툼이었습니다. 영국과의 전쟁은 당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전쟁들은 그 당시 상황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네요. 이 보어는 네덜란드말로 농부라고 합니다. 이주민들이 하던 일이 농업이었던 것이죠. 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어인들에 의해 세워진 내륙의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자유국에서 다이아몬드와 금광이 발견됩니다.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어 골드러쉬가 일어나면서 영국과 대립이 격화됩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나 다름없던 남아공은 네덜란드가 나폴레옹에 의해 점령되었을 때 영국이 인도무역 중계지로 케이프타운을 점령합니다. 1815년 영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그 나폴레옹에 의해 남아공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 시절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위트와인(콘스탄시아)을 마시고 아주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이 드네요. 1961년에는 영국연방에서 이탈하였으나 영국의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미국이 현재 세계의 패권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영국도 아주 대단합니다. 호주도 캐나다고 남아공도 그리고 바다의 제도들 등 영국의 간섭이나 영향을 받는 땅들이 많네요. 미국도 영국에서 분파했다고 과장해서 거의 한 문화 국가라고 한다면 이 지구는 영국과 미국의 잉글리쉬 세계라고도 해야겠네요. (물론 미국은 전 세계의 다양한 민족들이 이민을 와서 전세계 국가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 같습니다.) 그런 산업 혁명시대의 제국이었던 영국은 남아공에서 노예해방과 자유주의정책을 펼치는데 노예들이 본인들의 재산이며 그 들을 부려서 일을 시키던 (농업과 목축을 하던) 보어인들과는 충돌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일어난 보어전쟁(1899)에서 보어인들은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결국은 영국에 패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보어인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후에 가장 많은 인구 분포를 가진 아주 보수적인 세력이 됩니다. 현재 보어인은 전체 백인 인구의 약 6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상당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보어인들은 흑인 원주민들과 그리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영국 식민 정부 사이에서 싸우며 생존해와서 그런 성격으로 변질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네덜란드와는 오래전부터 단절되어서 아프리카 토착 백인이라는 정서가 강하다고 하네요. 네덜란드에서도 보어인들을 좋은 시각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서로 여러가지 이유로 지원해주지 못했던 과거의 이유도 있거니와 아파르헤이트가 네덜란드인들에겐 친나치적 인종차별주의라 나치에 의해서 피해를 많이 봤던 네덜란드인들이 그들을 곱게 봐 줄 수가 없었겠죠. 결국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헤이트(apartheid)는 보어인들 노예제도의 잔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로 심했는지 상상을 넘어섭니다. 독일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를 둔 혼혈 아들(현재 미국의 코메디언)의 페이스북 동영상을 우연히 봤는데 그 코메디언의 아버지와 길거리에서 같이 다닐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경찰에게 걸리면 형사처벌이었나봅니다. 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끔 황당한 일들이 많죠?

  와인의 이야기로 가보죠.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해서는 우리도 그랬지만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도 반대하고 심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안 좋은 이미지는 와인 산업에도 영향을 끼쳐서 와인 수출 산업이 그렇게 발전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남아프리카를 신세계 와인으로 분류하지만 사실 300년이 넘는 와인 생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과 바다의 시원한 바람이 포도를 잘 자라게 해서 생각보다 저 평가된 훌륭한 와인들이 많다는 것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남아공에서는 피노따쥐라는 전 세계 유일한 포도품종이 있는데 그 품종은 1900년대 초반에 피노누아와 쌩쏘의 교배로 만든 품종입니다. 와인의 블렌딩에도 피노따쥐를 기본으로 다른 품종을 섞는 케이프 블렌딩이라는 독창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남아공 와인은 콘스탄시아(Constantia)가 발원지라고 합니다. 스위트와인으로 유명합니다. 클레인 콘스탄시아에서 만든 스위트 와인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에서 상당히 인정받은 와인이라고 합니다. 스텔렌보쉬(Stellenbosch)는 뛰어난 와이너리들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케이프 타운에서 동쪽으로 자동차로 30~40분이면 도착하는 곳으로 남아공 최고의 와인들이 생산되고 있답니다. 17세기 건축물들도 많이 남아 있어서 이국적인 풍광을 드러냅니다. 네덜란드 식민 지배 당시 총독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 스텔렌보쉬 대학은 유색인종의 입학이 금지 되었었던 백인들을 위한 도시였나 봅니다. 거주민이 대부분이 백인이라고 합니다. 아직 아파르헤이트의 모든 뿌리가 뽑힌 것은 아닌 듯싶습니다. 좀 더 세월이 흘러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와인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곳입니다. (Paarl)역시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콘스탄시아와 스텔렌보쉬보다는 덜 인정받는 곳이지만 샤또 페트뤼스를 소유한 무엑스 가문 등이 진출해서 고급 와인 생산을 기대할 만한 곳입니다. 프렌치훅(Franschhoek)1865년 프랑스 낭트칙령(신앙의 자유를 허락)의 철폐로 신교도인 위그노 망명자들이 대거 남아공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지역입니다. 프랑스의 와인 제조 기술도 같이 들어와서 좋은 와인 산지가 되었습니다. 남아공 와인으로 접근이 쉬운 와인은 페어뷰 슈텔럴보쉬 메를로, KWV 루드버그(피노따쥐에 카베르네소비뇽과 쉬라 품종을 브렌딩한 와인이며 향이 진하고 부드러운 여운을 남기는 미디엄 바디 와인입니다. 삼겹살이나 고기 구이 등과 잘 어울립니다), 베이어스클루프 시너지, 브램튼쉬라즈, 토카라 존더남 소비뇽블랑, 리스텐베르크 존X메리맨 등이며 3~6만원 선에서 구매 가능한 와인입니다. 더불어 오바마 미국의 전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 당선 후 마셨다는 그레이엄 벡 블루트 NV도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스파클링 와인으로 샤르도네와 피노누와를 블렌딩해서 만든 와인입니다. 구매가격은 6~7만원 수준으로 예상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헤이트에 저항하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로벤 섬에서 갇히게 됩니다. 독서도 허락되지 않았고 새벽5시반부터 채석장에서 고된 일을 했던 그는 자서전에서 '감옥 문을 나선 뒤에도 계속 그들을 증오한다면, 여전히 갇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에 증오심을 내려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통령 당선 후 본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사람과 오찬을 나눴고, 감옥의 간수를 용서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분입니다. 증오심은 먼저 자기를 파괴하는 것을 아셨던 것이죠. 원망과 증오 그리고 복수심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증오를 내려놓는 사람의 인생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의 인생은 어마 어마한 차이를 만들 겁니다. [참조: 행운연습(류쉬안), 와인상식사전(이기태), 두산백과]